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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산그림자 2

무슨 꿈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꿈을 꾸다 잠이 깼다.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시계가 없어 몇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벽기도회 시간인 듯 했다.
그냥 누워있을까 하다가 잠이 다 달아난 듯 해서 옷을 껴 입고 기도원으로 향했다.
새벽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꽤 넓은 기도원 안에 대여섯명 정도의 사람이 제각기 자리하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식당에서 마주친 내 또래의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도가 되기도 하면서 마음 한켠으로 서운한 느낌도 들었다.
터무니없는 자신의 감정에 놀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도는 할 수 없었다.
참 이상했다.
기도원에 앉아서 통 기도가 되지 않는게 너무 이상했다.
시간이 되었는지 원장이 찬송을 인도했다.
사람이 몇 안되어서 각 개인의 음성이 그대로 제각기 울려펴졌다.
금방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목소리가 꺽꺽하게 굳어서 제대로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큰 소리로 찬양을 하고나자 좀 시원해졌다.
간단하게 성경을 묵상하고 설교를 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한 감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 거슬리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문제집을 펼쳤다.
영어는 몇 페이지 씨름하다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덮어버렸다.
그리고 수학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게 차라리 나았다.
시계를 가져오지 않아 시간을 알 수 없는게 참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상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새 밖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어쩜 아침식사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방에서 문제집을 풀어나갔다.

평소에는 거의 배고프다는 느낌을 모르고 살았는데 배가 고팠다.
겨우 한끼 걸렀을 뿐인데 이렇게 심하게 배가 고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점심시간마저 놓쳐버릴까바 걱정되어 나는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다.
어제 못간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잘 다름어진 무덤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멈칫했다가 그런 내가 우스워서 혼자 웃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산은 어제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노곤하게 졸음이 밀려들면서 그냥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하고 따스했다.
숲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자 숙사 뒤편이 나타났다.
길을 따라 걷다가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건물 바깥쪽에 방마다 불을 지필수 있는 아궁이가 달려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방 아궁이에는 누군가 어제밤 불을 땐 흔적이 남아있었다.
누가 이렇게 해줬을까?
원장일까?
잠결에 들리던 두러거리는 소리가 그럼 내방에서 불을 때주던 누군가의 목소리였던건가...

식당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나를 맞았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었다.
다섯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웃어제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앉은 테이블 전체가 내 눈에 들어와버렸다.
나는 입구쪽에 그들을 등진채 앉아서 혼자 식사를 했다.
식당 안은 갑자기 조용해지며 소근거림 같은 소리만 들렸다.
몹시 배가 고팠기에 나는 먹는데 열중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시큼한 무깍두기가 식욕을 확 돌아오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의자소리가 들렸다.
식당을 나서는 그들의 대화는 뭔가 좀 부자연스런 느낌이었다.
그들이 나가면서 힐껏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모른채 했다.
되도록 천천히 식사를 하고 숭늉을 마시고 일어서면서 혹 밖에 그들이 있을까바 신경이 쓰여 문을 나서기가 주저되었다.
하지만 내가 식당을 나갔을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도감과 함께 또 다시 약간의 서운함이 일었다.
그런 나 자신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설레임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

초등학교때부터 내 생활의 모든 것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학교때부터는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남학생들과 일상적으로 접촉을 하면서 지내왔다.
중학교때부터 오랫동안 좋아한 남학생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그런 내 감정을 표현한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사람을 알게 되었을때는 천지차이였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남학생들은 대체로 내가 읽어낼 수 있었고, 그들은 나를 긴장시키거나 설레게 할만한 어떤 것들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잘 생겼다는 것 때문에 끌려본 적도 없고, 또 나를 긴장시키지 않는 남자에게는 전혀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니 사귄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불순하게 느껴졌고, 더군다나 그런것들이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또 우연한 만남 같은 것도 신뢰하지 않았고,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믿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지나치게 순수한 것만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에다 애늙은이 같은 면을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이 산속에서 낯선 설레임을 살짝 살짝 느끼고 있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제집은 전과목을 다 챙겨왔는데 수학 문제집만 계속 붙들고 있었다.
어려운 문제는 아예 그냥 건너뛰고 풀 수 있는 문제만 풀어나갔다.
종이 울리고 있었다.
오후 예배시간인 듯 했다.
지루하기도 해서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기도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전부가 모인 것 같았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 왼쪽 가운데 자리에 모여 앉아 찬양을 리드하고 있었다.
적당히 화음을 맞춰 부르는 노래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도 알토로 화음을 넣어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기도원 안은 장중한 화음이 울려퍼지면서 생기가 돌았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뒤에서 "잠깐만요!" 하는 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다섯 남자가 한꺼번에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틀뒤가 기도원 십몇주년 기념일인데 예배시간에 같이 특송을 하자는 이야기였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며 머뭇거리고 있자 기념예배가 너무 썰렁할 것 같다면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참 잘 하시던데..."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그러자고 했고, 그들은 지금 당장 연습을 하면 좋겠다며 허름한 한옥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조그만 방이 하나씩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각자가 방을 하나씩 쓰고 있었다.
그 중 한 방에 다 함께 들어앉자 조그만 방이 꽉 차 버렸다.
방 주인이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스텐컵에 커피를 타는 동안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모두 예비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고 있는 재수생들이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학생회에서 간부를 맡아서 열심히 활동하던 친구들이었다.

내 소개를 할 차례가 되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름 외에 그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이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이름과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정도로 이야기 하자, 어느 교회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마지못해 교회 이름을 대자 그들 중 하나가 내 친구 이름을 대며 아느냐는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친구들이 무슨 사이였냐고 추궁을 했고, 그 친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좀 안다고 응수했다.
그런 대화는 딱 질색이었다.
"어떤 곡으로 할까요?"
이곳에서 잠깐 잠깐 엄습했던 설레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그들의 대화를 잘랐다.
커피를 마시며 좁은 방에 둥글게 모여 앉아 노래를 불렀다.
무슨 곡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두 곡 정도를 연습했을 것이다.
보통 그렇게 하니까.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즐거웠다.
화음이 멋지게 어우러질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내 설레임의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한무리의 남자들로만 보일 뿐, 특별하게 각인되는 사람은 없었다.
노래 연습을 마치고 나오면서 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또 시들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분명하진 않더라도 막연한 설레임이나마 남겨둘 걸 그랬다고 후회도 되었다.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5-09-15(13:28)
방    문 :81015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홈페이지 :
첨부파일 :


 이쁜공주 ♡ 재밌어염 ㅋㅋ 사진도 짱   2007-11-0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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