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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부부

서른일곱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남편과 8년을 부부로 함께 살았다.
결혼 전부터 공동체 생활을 해왔기에 결혼 이후 우리의 일상은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는 듯이 보였다. 남편이 문간방에서 안방으로 짐을 옮겨오게 된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변화일 정도로 우리는 이미 일상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혼 전 10년간 나는 남편의 선배였고, 선배라는 명분으로 당연한 듯 반말로 주고 존대말을 돌려받았었다.
그래서 결혼 후 한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아마 호칭 문제와 존대말을 쓰는 것이었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누구야!’에서 ‘누구씨!’로 부르는 것과 익숙하게 쓰던 반말 대신 존대말로 대체하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던지...

하루는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남편을 바꿔달라고 해야 하는데 통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사람 있니?” 라고 해서 상근자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우리가 결혼할 때 가장 당황스러워 한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이아니었나 싶다.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던 후배랑 사무실 상근자들의 놀란 표정들이 지금도 선하다. 우리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우리 둘의 조합이 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은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인데 반해 나는 지극히 정서적인 사람이라 정반대 유형으로 대비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하긴 함께 일하면서 참 어지간히도 싸워댔다. 매번 동일한 사안을 두고 서로의 방법에 공감을 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느 한쪽도 쉬이 포기하지 않는 강한 성격이라 둘이 의견충돌을 일으킬 때마다 후배들은 “영감 할마시 또 시작이네” 하면서 난감해하곤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의외로 우리는 크게 싸울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내왔다. 아마 결혼 전 10년간 치열하게 열심히 싸워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연인이 아닌 선후배로서 동료로서 함께해온 시간들이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어느새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색깔에 물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일들 앞에서 우리의 선택은 큰 갈등 없이 대부분 일치했고, 선택의 기준 또한 단순하고 명쾌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내게 안정감과 평온하고 지속적인 일상을 가져다 준 것 같다.
그런데 간혹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뱉는 남편의 말에서 남편은 나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의견대립이 될 때 남편은 자신이 불리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 적극적인데다 정확하고 정밀한 묘사를 선호하는 여자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 남자는 요즘 들어 “남자가 표현함에 있어 여자에게 우선권을 뺏기기 때문에 항상 당한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에게는 여자랑 말로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거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면서 아내와 충돌하면 무조건 빨리 꼬리를 내리라고 충고를 한다.

대외적으로 강성 이미지인 남편의 이면에 숨겨진 여리고 섬세한 면을 볼 때 나는 참 즐겁다.

선물받은 상품권으로 구입한 비싼 우산을 어딘가에 두고 온 것을 안 순간 시야를 가로막는 아내의 얼굴에 혼비백산하여 정신없이 달려가 우산을 찾아온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하는 남편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든지... 우리 형편에 다시는 만질 수 없는 고급 우산이니까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줄은 짐작도 못했었다.

또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쳐놓고도 아내에게 혼날까봐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가 한밤중에 발가락이 퉁퉁 부어올라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서야 이야기를 할 때는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밤새 얼음찜질을 해주고 말아야 했다.

8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는 예민하던 아내는 어느새 호랑이가 되어 있고, 어지간한 일에는 끄덕도 안하던 강성 이미지의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볼 정도로 소심함을 보이게 됐다.

결혼 초, 나는 남편에게 “어떤 순간에 내가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면 강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나에게 양보해주고 집중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종종 나는 어떤 순간에 “나 지금 상처받았어!” 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일단 하던 말을 멈추고 기다려주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나 지금 상처받았단 말야!” 하니까 즉각적으로 남편이 “나도 상처받았어!” 하고 외쳤다. 순간 얼마나 놀랐던지 남편과 마주보다가 둘이 정신없이 웃은 적이 있다. 남편도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생각조차 못하다니...

하지만 지금 남편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아내가 아니다. 자식이 자라면서 남편도 아내도 자식이 가장 무섭다. 자식이 무서워서 함부로 언성을 높이지도 못하고, 자식이 무서워서 거짓말도 못한다. 자식으로 인해 부부는 성장하고 비로소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 같다.

8년의 부부생활이 우리를 이렇게 변하게 했는데, 자식이 결혼할 때쯤이면 우리는 또 얼마나 변해있을까.
부디 그냥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만큼 성숙한 부부가 되어 있기를 희망한다.


 

 

이    름 :감자
날    짜 :2005-10-29(17:01)
방    문 :94628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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