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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두고온 아이들과 함께

내 첫사랑이던 아이들.
그 애들이 이곳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 여름해변학교를 한다.
한마음 회원들과 함께 하는 하계캠프로,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나는 휴가를 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반가운 얼굴들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고, 가족이 아닌 손님의 자격으로 참여해서인지 편안하게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공부선생님들은 여전했다.
모르는 얼굴들이 꽤 있었고 그들은 신입생인 듯 했다.
일년 사이에 아이들은 키도 마음도 부쩍 자라 있었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탈바꿈한 머슴애들은 재법 총각티가 나게 의젓한 모습으로 정중하게 나를 대했다.
옛날처럼 녀석들의 엉덩이를 한방씩 갈기자 "어디 처자가 함부로 총각 히프를..." 하며 난색을 표명한다.
꼬맹이들과 여학생들은 그저 반가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팔에 매달리고, 뽀뽀하고, 껴안고 하며 안부를 묻는라 정신이 없다.
헤어져서 지낸 일년이 단숨에 메워지고, 누군가가 기타를 안겨줘서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내가 가르쳐준 노래들을 아이들은 하나도 잊지 않고 불러냈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몇 밤 자면 나도 어른이 되냐고 자꾸 물어보지만~
긴 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매 울고 가니~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하며 나는 자꾸 가슴이 복받쳐 올랐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한건가.
이토록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두고 나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
이틀동안 아이들과 함ㄲ게 지내며 나는 내내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가슴이 아팠다.

모든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끝나면 고등학생들과 공부선생님들이 따로 모여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밤시간에 이루어지는 이 자리는 모두 똑같이 친구가 되는 자리다.
호칭도 선생님이 아닌 형 언니로 바뀌고, 고3쯤 되면 소주도 한 잔쯤 마시는 게 허용된다.
모두들 너무나 진지하고 성실하다.
평소에 좀처럼 자신을 열지 않는 아이도 이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열게 된다.
집에서의 문제, 졸업 후 진로문제, 취업, 이성문제 등 자신의 고민이나 갈등을 내놓는 아이들을 보며 한편으론 대견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세상에 대한 분노가 되살아나 내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마지막날 밤 나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함께 살 때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자신의 갈등과 고민을 이기지 못해 도망친 나를 용서하라고.
삶의 모습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했던 내 생활은 실패였다고.
이제 되돌릴 수는 없지만 현재 내가 속한 곳에서 또 다른 너희들을 만나 새롭게 노력하고 있으니 부디 나를 용서하라고...
그러나 아이들은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선생님이 있어서 그래도 많은 힘이 되었다. 같이 살 때는 몰랐는데 선생님이 가신 다음에야 선생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 있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왔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즐겁게 웃다가도 갑자기 가슴 한켠이 예리한 칼날로 찢겨지듯 아파왔고, 이렇듯 나를 필요로 하는 이 아이들을 두고 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나는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앉아 해돋이를 기다리며 나는 이 아이들이 진정으로 나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고1인 미경이 "선생님, 우리하고 같이 있으면 안되요?" 라며 울음을 터뜨려 나는 참고 참던 울음을 끝내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부둥켜 안고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 당신이 직접 이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이 아이를 지켜주세요. 이 아이가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겨우 이틀을 떠나 있었는데 다시 돌아온 내 자리는 몇 달간 자리를 비운 것처럼 낯설었다.
어른들께 인사하고 아침식사 설거지 마치고 나서 계속 잤다.
오후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자 내가 담당한 중학생 남자애들이 우루루 방으로 몰려와서는 재잘댄다.
문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똑같이 내가 섬기고 사랑해야 할 아이들이지만 그 애들이 내 첫사랑이어서인지, 지금 함께하지 못해서인지 더 끈끈하게 내 의식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밀린 빨래 바구니 두 개가 산을 이루듯 솟아 있었다.
정신없이 해야 될 일거리가 있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때로 아이들이 더 단순하고 명쾌할 때도 있다.
지하 세탁장에 웅크리고 앉아 온종일 마음을 잡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나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한마디.
"보모요, 가들이 그래 마음에 걸리면 가들한테 가소. 나도 보모가 와 여기 있는지 모르겠니더"
짜식들! 철딱서니 없는 개구장이인줄만 알았더니 속은 있어가지고...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5월 23일/제391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18)
방    문 :83143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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