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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집단상담

권세경 선생님!
선생님이 오셔서 함께하는 시간을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신기할 뿐입니다.
91년을 맞는 송구영신 예배때 몇가지 기도 제목을 적었지요.
그 중 하나가 "애육원이 조직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모범적인 시설이 되게 해 주세요" 였지요.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면으로 간섭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답니다.
선생님, 우리집은 좋은 시설을 갖춘 외양에 비해 실제 교육프로그램이나 의식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집니다.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도 오랜동안 지속되어온 관습에 주로 의지하여 고정되어 버렸고, 비성서적임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방법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서미카엘'이나 일부 문제아들의 비행보다 직원들의 사고방식이 근원적으로 더 문제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잘못이 잘못인줄 모르고 말입니다.
아이들은 좀 영악할 수 있다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순수합니다.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다고 여겨지면 마음을 열고 진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답니다.
시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직원들간의 문제와 직원들의 부정적이며 비민주적 아니 불수용적(아이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우리집의 치부를 드러내 놓는 것 같아 부끄럽고 또 두렵습니다.
그러나 정말 치유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 어른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선생님께서 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글 드려서 부담이 되실까봐 염려됩니다.
그러나 가끔씩 이렇게 서신을 올릴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뵐려면 여러날 있어야 되는군요.
안녕히!

권새경 선생님은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셨는데 매주 토요일이면 오셔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펼치신다.
토요일 오후에 두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집단상담을 나는 참석도 못하면서 아이들보다 더 가슴설레며 기다린다.
부끄럽게도 심리학과 4년동안 나는 단 한번도 집단상담에 나를 내놓지 못해 집단상담 자체가 내게 엄청난 기대와 설레임을 준다.
이분이 처음 우리집에 오셨을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예전에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나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답답함이 항상 숙제처럼 남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상담심리를 전공하신 분이 우리를 도우기 위해 갑자기 나타났으니 어찌 아니 반갑겠는가.
사무실 선생님들도 이분을 기꺼이 반기셨고 내게 이분을 도우도록 허락해 주셨다.
서른 후반에 새로이 공부를 시작한 이분에게서 나는 많은 도전을 받았다.
나보다 꼭 10년을 먼저 사신 분인데도 인상이 너무나 맑고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솜사탕처럼 감미로웠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준비를 하고 선생님이 오셔서 상담이 시작되면 나는 굳게 닫혀진 방문 앞에서 잠시 머물러 서있는다.
마치 딴 아이들처럼 활달하고 싱그러운 모습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느껴진다.
상담시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절대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기를 열 수 있다.
일주일에 단 한시간, 편견없이 자신들이 받아들여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처음 집단상담을 시작할 때, 선생님은 나를 참여시키고 싶어 하셨다.
아이들의 의견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집단의 어른들이 참여하지 않는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사양했다.
3회째 집단상담을 마치고 나서 선생님은 '미카엘'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어떻게 아셨느냐고 하자, 상담장면에서 반복적으로 가장 많이 호소하는 어려움이 미카엘로 인한 것인데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고 하신다.
아마 지난 새벽에 갑자기 출현해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리라.
어른들은 미카엘의 행패가 옛날보다 그 정도가 덜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시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신다.
하긴 파출소에 신고를 하기도 하고, 원장님이나 총무님이 호통을 쳐서 내보내기도 했지만 얼마 후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를 이집에서 완전히 차단시킬 수 있는 속시원한 방법이 뭐가 있겎는가.
그렇지만 아이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게 어디인가.
그리고 또래 집단에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점검받고 때로는 비판받는 일이 어른들의 그 어떠한 훈계보다 설득력있게 아이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6월 6일/제393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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