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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결혼 통보하기

1997년 10월 5일 우리는 결혼을 했다.
서른 일곱 늦은 나이에 가로늦게 결혼을 하겠다고 신랑감을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더니 우리 아버지,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에다 에메모호한 말씀으로 오락가락 하셨다.
신랑감이랑 동갑인 네살 아래의 남동생도 놀라서 어리벙벙하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결혼을 안하고 그냥 혼자 살줄 아셨단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내가 너처럼 공부를 많이 했으면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결혼 안하고 혼자 살았을거다." 하신 적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아버지로선 대학교육을 마친 딸자식이 아주 많이 공부한걸로 생각되시나 보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는 딸 아들 차별을 두지 않고 키워야 한다는 주의였고, 첫 자식인 나에 대해서는 유난히 많은 사랑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내 아래도 줄줄이 태어난 세 명의 남동생들은 수시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절대 누나에게 덤벼서는 안된다. 손지껌을 하는 일이 있었다간 그날로 내 손에 죽는 줄 알아라." 등등의 훈시를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라온 시절엔 남동생에게 맞는 누나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5남매의 맏이와 막내가 딸인데 이 두 딸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빠!'라고 부르면서 때에 따라서는 어리광섞인 반말도 하는 반면, 세 아들은 얼마나 예를 갖추어 아버지를 대하는지 참 대조적이다.

결혼식 날짜도 식장도 형식도 다 우리 마음대로 결정해놓고 양가집에 차례로 통보하듯이 인사를 한 샘인데, 양쪽 집안에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시댁엔 팔순이 넘으신 시조모님이 계셨는데 내 나이를 들으시곤 잘못 들으셨나 해서 몇번이나 되물으셨다.
"서른 일곱입니다."를 점 점 더 크게 대답하다가 갑자기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리곤 한동안 침묵이 흘렀었는데, 어색한 침묵을 깬 우리 아버님 "연상의 여인이란 노래도 있더라마는 재식이는 그런가보지?" 하셔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알게 되셨는지 모르지만 며느리감이 아들보다 한살 더 많은 걸로 알고 계셨다.
아들보다 네 살이나 더 많은 며느리감을 마주하시고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싶다.
10월 5일 12시에 도청 강당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이미 다 확정해서 통보를 하고 있으니 걱정도 많으셨다.
번듯한 예식장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도청 강당을 무료로 빌려서 한다지, 형식적인 모든 절차는 생략한다지, 결혼식 준비는 스스로 할테니까 당일날 오시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싶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신랑 신부가 웨딩드레스와 예복 대신 간편한 개량한복을 입겠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히셨을거다.
우리 어머님, 다음날 사무실로 오셔서 나를 불러내시더니, 그래도 신부가 꽃인데 웨딩드레스는 안입더라도 고운 한복으로 맞춰입으라고 봉투를 쥐어주고 가셨다.

수중에 모아놓은 돈 한푼 없었던 나는 어릴때부터 부르짖어온대로 빈손으로 결혼을 하겠다고 덤볐고, 그걸 보며 우리 아버지 억장이 무너지셔서는 한마디 하셨다.
결혼할 생각이 있었으면 돈을 모아야지 우째 돈안되는 일만 하면서 태평하게 보냈느냐고.

친구가 매형이 될 판에 놓인 남동생은 의외로 선선히 받아들였는데, 이 둘도 한동안 호칭이 익숙치 않아 애를 먹어야 했다.


 

 

이    름 :감자
날    짜 :2005-11-17(17:41)
방    문 :111628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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