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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물타령

"물구경"

바다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 - 글래디스의 방문에
노한 것인가
아니면 어울려 춤을 추는 건가
언덕길을 내리걸어 바닷가 까페까지 오는 동안
작은 우산은 홀라당 뒤집어지고
홑겹 바지를 타고 빗물이 내린다.
천장으로 주루루 눈물이 흐르고
아이들은 열심히 걸레를 비틀어
받쳐놓은 바케스에 물을 모은다.
복도를 홍건히 적신 물위로 미끄럼을 그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고무장갑 끼고 분주한 어른들은
궂은날 빨래거리 만든다고 잔소리로 쫓아다닌다.
까페 창으로 먼지낀 파도가 밀려오고
음악도 조명도 다 죽은 실내엔
중년 남자 둘이 아는 채 하느라 시끄럽다.
폭우 속을 걸으며 왜 그리 신이 나는지
종이짝처럼 날리는 우산 아래로
사정없이 낼리쳐 감기는 빗줄기가
어쩜 그리도 상쾌하게 스미는지
눈 높이로 날려가는 구름조각
설악산 대청봉 비구름속 정경이 되살아나는 시간.
소식 모르는 그날의 동행자들처럼
내일이면 시침떼고 딴전일지도 모를
이 바다와 하늘을
까페 창 너머로 정신없이 달려간다.


"물난리"

단지 글래디스의 옷자락이 펄럭일 뿐인데도
우리집은 작살이 났다.
천장에서부터 벽을 타고 내리는
글래디스의 눈물인가 땀방울인가
찱흙으로 댐을 빚어 쌓고
스폰지로 물을 먹여 퍼내고
이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똑같이 흥분하여
흔들리는 촛불들 사이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락을 합창한다.
내일 간식 당겨 먹으며
취침시간에 쫓기지 않는
모처럼의 물난리 치닥거리로 분주한
밤을 지새며
촛불 그림자에 흔들리는
아이들 얼굴을 살핀다.


"밤회상"

사정없이 비가 내리퍼붓고
바람은 휘파람을 불어재킨다.
구구절절 '사랑하는 당신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새삼스레 나도 당신이 그리워
앙칼지게 휘두르는 글래디스의 칼날바람 요란한 한밤에
수그린 고개 한 손으로 받치고
당신 모습을 떠올려 본다.
간간이 당신 이름자가 내 귀에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만
욕심내지 않기로 작정한 당신인지라
당신이 어드메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멀리 달아나기만 했다.
바람소리 요란한 이 밤에
잃어 버린 줄 알았던 아픔이 파헤쳐지고
조심스레 가슴 쓸어내려 다독이느라
눈물 한 방울 한숨 한 모금 뱉아내지 못한다.


바깥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시야를 가리며 장대같이 내리꽃히는 빗줄기와 폭풍.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바닷가에 인접한 언덕배기에 우뚝 솟아있는 우리집으로선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신이 난다.
집 전체가 물놀이장이 되었고, 학교도 며칠 쉬기 때문이다.
꽤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3일 연속으로 퍼붓는 태풍으로 구석 구석 흠집이 나서 물이 새지 않는 곳이 없다.
전기도 끊기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방문 앞에 쌓인 빨래더미에서 쉰내가 나기 시작한다.
이대로 두면 곰팡이가 슬어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마음 한편으로는 꽉 짜여진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 거대한 자연의 횡포 앞에서 인간의 문명이 얼마나 보잘것 없으며 허망한가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큰 남학생들과 남자 직원들이 전기를 고치고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뒤치닥거리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집안은 난리 북새통인데도 나는 오히려 한가했다.
비가 그치고 지하 세탁장은 빨래거리로 온통 어지럽고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핑계삼아 진희네로 빨래거리를 싸들고 가기로 했다.
운동장에 진희가 차를 몰고 도착하자 꼬맹이들이 신바람이 난다.
"보모요, 그거 들고 어디 가능교?"
"빨래하러 간다. 왜"
그날 진희네 자동세탁기는 몸살이 나도록 빨래를 했다.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6월 13일/제394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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