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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정신분석

전반적으로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
혈압이 떨어지는 일이 잦아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쉬 피로해져서 낮에도 자리에 누워 있는 일이 많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내 방에 들어와서는 열이 나는지 머리를 짚어보고 맥박을 재주곤 한다.
체중이 너무 많이 줄어서 고무바지 외에는 허리가 맞는게 없다.
정말 왜 이런지 모르겠다.
머리속에서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맴돌고, 누워있어도 잠은 오지 않는다.
이러는 나를 용납하기가 어렵다.
내과 의사가 몇가지 검사를 해보자는데 혈액검사가 들어 있었다.
주사공포증을 호소하며 못하겠다고 하자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 정신과에 한번 가보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하긴 우선 검사가 안되는 마당에 무슨 처방을 할까마는 속이 상했다.
그냥 돌아서 나오다 잠시 생각했다.
"지금 내 몸이 내 것만은 아니잖아. 아이들에 대한 책임도 있잖아. 한번 가보지 뭐."
젊은 정신과 의사는 내가 말하는 걸 바쁘게 받아적었다.
처방해준 약을 받아들고 나오며 이 약이 내게 도움이 될 지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한의원에 갈 걸 그랬나?
2년전에 나를 진맥한 한의사는 혀를 끌끌 하며 "저런 기가 없군. 이러고 어떻게 살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텐데..." 했었다.
약은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수면제가 들었는지 약을 먹으면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이틀 먹고 그만두었다.

정신과에 발을 들여다놓은 김에 정신분석을 받기로 했다.
정신분석을 통해 내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보는 것도 유익할테니까.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저항과 방어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선생님, 크리스챤이세요?"
"왜 그렇게 묻습니까?"
"선생님이 크리스챤이 아니라면 저와 저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실 수 없으니까요. 크리스챤이세요?"
의사는 정신분석이 진행되는 동안 거의 말이 없었고, 나 혼자 40분을 메꾸어야 했다.
대여섯 차례 진행되는 동안 정신분석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면서 치료는 종결되었다.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우선 자발적인 동기가 없었고, 의사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이냐는 내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지 않은 것과 연령대가 나와 비슷하다는게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내 방어와 저항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의식적으로는 '무엇이든지 생각나는대로 그냥 애기하자'고 작정했지만 무언가 나를 가로막는게 있었던 것 같다.
꿈을 탐색해들어가면서 그는 내게 일기장을 가져오게 했다.
일기장에는 내 모든 생활과 생각들이 걸러지지 않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꿈에 대한 기록들도.
세권이나 되는 두툼한 일기장을 의사가 다 읽어볼 지 의문스러웠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병원에 가며 예전에 정신과에서 실습하던 때가 생각났다.
실습 첫날 격리병동에 들어설 때 우리를 향해 우루루 몰려들어 반가움을 표현하는 환자들에게 놀라 비명을 삼키며 겨우 발걸음을 떼어놓던 일이며, 기대에 찬 첫 회진시간에 맞닥뜨린 한 여자 환자는 우리가 그녀에게서 다른 환자에게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런데 선생님, 안기부에서 아직도 저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 선생님들 중에도 안기부원이 있구요" 라고 해서 충격을 주었다.
한 남자 환자는 아무래도 이빨속에 녹음기를 설치해 놓고 자기를 감시하는 것 같다면서 언제 치과에 보내줄거냐고 담당과장을 닥달했다.
대부분 약물치료 때문인지 무기력한 인상들이었고 망상과 우울증이 주 증상들이었지만 잊지 못할 코믹한 장면도 있었다.
"요즘은 잘 씻습니까?"
"예, 세수했습니다."
"발도 씻었습니까?"
"예!"
"언제 씻었습니까?"
한참 생각한 후에 그 환자는 "금요일 날" 이라고 대답했다.
그날이 월요일이었으므로 그가 발을 씻은건 삼일전이었다.
실습생 모두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경련이 일도록 한 사건이었다.
생각할 때마다 웃음을 자아내곤 하던 이 사건이 이제는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내 주사공포증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돌도 되기전 간난아기때 형성된 것이라 단기간의 정신치료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고 기약없이 메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의사가 박봉의 보육사라는 내 입장을 고려해서 치료비를 할인해주기는 했지만, 한달 월급의 절반 가까이 드는 치료비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도 없었다.
겨우 맛뵈기만 한 정신분석.
하지만 언젠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시 정신분석을 받아볼 것이다.
보다 성숙한 삶을 위해.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7월 4일/제397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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