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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학교방문

아이들 학교방문을 시작했다.아이들 학교방문을 시작했다.
가출하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중3짜리 아이들도 셋이나 되어서 어차피 학교에 불려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내 쪽에서 먼저 계획을 세워 방문하기로 했다.
학교를 방문하자니 준비할 게 많았다.
아이들과 개별면담을 다시 해야 했고 외출복도 한벌 구입해야 했다.
"보모요, 예쁘게 하고 오소" 라는 아이들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멋을 좀 부려보기로 했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도 다시 하고, 내 형편에 과하다 싶은 점잖은 투피스도 한벌 샀다.
아이들이 가출하거나 해서 보육사가 학교에 불려갈 때 대개는 경황없이 달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한번만 봐주십사고 사정하는게 상례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에게 내 아이들이 그저 불쌍하고 가엾은 문제아로 낙인 찍히는게 정말 싫었다.
그리고 나도 한 사람의 학부모로서 제대로 대접받고 싶었다.

세 아이가 함께 다니는 중학교를 첫 코스로 잡았다.
교문을 들어서자 마침 점심시간이라 운동장엔 시커멓게 숫기를 풍기는 머슴애들이 빽빽하게 놀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새로 온 선생님쯤으로 착각하는 듯 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우~ 하는 울림과 함께 일제히 시선이 내게로 향해졌다.
그 중의 한놈에게 다가서서 "교무실이 어디지?" 하고 묻자 "저긴데요" 라며 손가락으로 교사 중앙을 가리키던 그 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고마워!" 하고 돌아서며 웃음이 베어나왔다.
"새로 온 선생인갑다"는 속삭임이 뒤에서 들렸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선생님들 역시 호기심어린 시선들로 흘끔거렸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세 선생님의 이름을 차례로 말해 주었다.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다시 학부형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 중 한분이 자리에 계셨다.
1학년짜리 머슴애의 담임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대며 담당보육사라고 내 소개를 하자 그가 황급히 자리를 권하며 일어섰다.
아이의 학교생활이며 성적에 관한 얘기들을 하며 담임선생님은 왠지 허둥대고 있었다.
순진한 병아리 교사인 그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다소 혼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마 그에게서도 시설(고아원)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이나 편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육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허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담임선생은 방송으로 아이를 호출했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교무실을 들어서던 아이가 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헤불죽하게 웃음을 흘렸다.
집에서 보던 모습하고 너무나 딴판인,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폼을 잡고 있는 내가 우스웠을게다.
아이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려보내고 나서도 다른 담임선생님들이 오시지 않아 그와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아무래도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까?"로 시작해서 개인적인 질문을 계속 해대던 그는 알고보니 대학 후배였다.
그는 나보다 두학번 아래인 영문과 출신이었다.
"아이고, 선배님!" 하면서 그의 얼굴에 놀라움과 난감함이 어울어졌다.
옆자리에서 딴전을 피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교사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제히 웃음이 터지고 교무실이 잠시 떠들썩할 즈음 다른 담임선생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왔다.
그가 일일이 나를 소개하며 대학 선배님이라고 토를 달았다.

내가 교무실을 나오자 1학년짜리 머슴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모요, 인자 집에 가능교?" 하며 밝은 웃음을 띠웠다.
"그래 집에서 보자" 하고 아이의 등을 두드려 주어었다.
옆에 있던 아이의 친구가 "누군데?" 하며 물었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엄마야!"
집에 돌아온 아이는 신이 났다.
책가방을 멘채로 내방에 와서는 "보모요, 우리 샘하고 무슨 얘기 했능교? 샘이 너거 보모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 카면서 계속 내 머리 쓰다듬어사서 쪽팔렸니더. 그라고 보모가 내 친구한테 우리 엄마라 캤잖아요. 가가 계속 진짜가 카면서 물어가지고 애묵었니더" 한다.
"엄마 맞잖아" 하자 녀석도 "나도 그랬니더. 우리 엄마다 했니더" 하면서 함박 웃음을 피운다.

내 생애 최고로 멋을 부리고 찾아간 첫 학교 방문은 그렇게 끝났지만 대학 후배인 순진한 담임선생은 내 아이에 대해 각별한 정성을 보여주었다.
아이를 자기 하숙집에 데려가 점심을 먹이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따뜻한 시선을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아이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 담임선생과 나는 가끔씩 전화 통화도 하고 차도 마셨다.
다 같이 객지에서 만난 동문이라선지 그저 반갑고 좋았다.
언젠가 그는 차를 마시다 말고 말했다.
"선배와 후배, 학부형과 담임, 뭔가 관계정립이 되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나는 "그냥 사람과 사람이지요" 라고 응수했다.
어느쪽이든 내가 봉이 될 게 뻔하니까.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7월 11일/제398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6)
방    문 :74696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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