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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떠나간 이들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D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애육원을 떠난 것입니다.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니콜라스님의 마음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자녀임을 말씀해 주시며, 또 사랑한다고 평안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보모님들은?
당분간 전화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하지만 기도는 계속 하겠습니다.
'떠남'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직은 그곳에 있습니다.
저의 잘못들과 연약함, 아이들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함, 절제하지 못함, 하나님을 먼저 만난 자로 본이 되지 못함, 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위로를 얻습니다.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남는 여력으로 주위의 아그네스, 둘리, 킹콩, 박엄마, 최보모, 김보모 많이 위로해 주십시오.
친히 니콜라스님의 삶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며
사랑합니다.

D시에서 '봄~' 드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저는 D시에 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지만 지금이 중요하니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새로운 얼굴들과의 만남속에서 정답던 얼굴들이 그리워 문득 창문을 쳐다보지만, 그 넓고 푸른 바다와는 정반대로 오고 가는 차들 소리만 들릴 뿐 모두가 막힌 곳 같습니다.
아이들이 보고싶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님의 나라는 아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있었나 봅니다.
이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어지겠죠.
여러 가지 주위의 환경과 나의 생활에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랑 시장으로 돌아다니며 몇가지 물건 구입도 하고 그러다 보니 주일.
아침 첫차로 다시 돌아와서 빨리 소식 보내야 함을 되새겼습니다.
일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니콜라스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많은 변화 속에서 저의 마음도 아직 안정되지 못해 힘이 되지도 못하고 있음에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늘 나의 작은 등불이셨던 니콜라스님을 만나게 되어서 참 감사드립니다.
그곳의 원장선생님과 여러 보모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휴가 오시면 한번 연락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다시 소식 드릴께요.

- 아그네스 -


한달 사이에 두 사람이 떠났다.
나와 특별히 친밀했던 사람들이라 나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내 방에 혼자 앉아 있을 때면 문득 그들이 문 사이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들어설 것만 같다.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다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 불현 듯이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에 목이 메이곤 한다.
그런때 나는 처량하고 구슬픈 노래들을 한없이 불러댄다.
아이들이 참다못해 제발 그만두라고 역정을 낼 때까지.

3월에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장갑을 끼고 가라고 했다가 아이들이 "보모요, 봄이서더, 봄" 하고 응수해서 '봄보모'로 불리는 박보육사는 나를 제자훈련 시켜준 신앙의 스승이다.
그는 '화평케하는 자'였고, 참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결혼을 한달 앞두고 그만둘 때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해 나갔고, 마지막 일주일은 새로운 보육사와 함께 인수인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아그네스'는 한때 내가 돌보던 도토리방을 맡아 보던 보육사인데 '신의 아그네스'에 나오는 아그네스처럼 그 영혼이 너무나 순진하고 맑다.
6개월간 함께 방을 쓰며 사람이 너무 맑고 투명해도 안되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아그네스는 일년을 못채우고 떠났다.
한달 사이에 체2중이 5Kg이 불 정도로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해소하기도 했고,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자잘한 일들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곤 해서 지켜보기가 안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이들보다도 더 순진해서 가끔은 아이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했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은 아이들 울음소리로 집안이 초상집이 되었다.
아이들 역시 그녀의 영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바깥세상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그들이지만 아직 마음은 이곳에 남겨두고 있었다.
인터폰을 통해 주고 받던 우리들의 사랑고백.
이른 새벽 손을 맞잡고 함께 올리던 기도.
나른한 오후의 커피타임.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그립다.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7월 18일/제399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7)
방    문 :55706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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