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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경수

경수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뇌손상을 입은 중2 남학생이다.
지적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시력과 청력도 손상을 입었고 만성적인 중이염을 앓고 있어 항상 귀에서 물이 흘러나와 냄새까지 지독하게 난다.
말투가 어눌하고 비대한 몸의 움직임까지 굼뜨는 경수는 제또래 집단에 끼이지 못하고 항상 꼬맹이들과 어울려 지낸다.
하지만 꼬맹이들까지도 얕잡아보고 무시하기 다반사라 경수는 항상 외롭다.
오랜 시간동안 아이들의 짖궂은 놀림과 핀잔에도 적응이 되어 좀체로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리는 일이 없는 양순하기 이를데 없는 경수가 오늘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다.

아이들 몇이 나에게 와서 "경수가 지금 현관 앞에서 한시간이 넘게 울고 있다"고 보고한 건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였다.
경수를 데리고 오라고 아이들을 보냈지만 경수는 오지 않았다.
셔터가 내려진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던 경수는 나를 보더니 더 섧게 울어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올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며 안으려 하자 경수는 나를 밀쳐내며 "다 필요엄니더. 죽고 심니더" 라는 말을 딸꾹질을 섞어가며 겨우 뱉아냈다.

경수와 나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을 다 돌려보내고 나는 그냥 경수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았다.
"보모는 가소!"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살기 실니더" 하고 다시 울음.
잠시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격앙되어 울음을 터뜨리기를 30여분동안 반복하고나서 경수는 내 손에 잡혀 방으로 따라왔다.
"경수야, 보모한테 얘기해봐. 누가 때렸니?"
경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죽고 심니더"만 연발했다.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르기도 하려니와 두시간이 넘도록 죽고 싶은 서러운 감정을 게속 유지한다는게 너무 뜻밖이라 순간적으로 뇌기능이 회복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때까지 나는 경수와 대화할 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대하듯 했다.
하지만 그순간 나는 경수에게도 제 또래와 똑같이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경수의 지적 수준이 갑자기 기적적으로 상승한 건 아니지만 경수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나도 한몫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수가 이렇게 가슴아파 하면서 우니까 보모도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렇지만 무슨 일로 죽고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얘기해주면 보모가 경수를 도울 수도 있을거야. 나는 정말 경수를 돕고 싶거든."
무조건 달래려고 하지 않고 일단 제 아픔을 인정하자 경수가 울음을 그치고 말문을 열었다.
"애들이 다 내를 실어하니더. 전부 다 내한테는 짜증만 내고, 냄새난다고 한방에서 안잘라카고, 저거 신경질난다고 내 막 때리고..."
그러면서 경수는 또 한참을 울었다.

경수는 오늘 초등학교 동생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초등학교 남학생들조차 저학년 몇을 제외하곤 경수를 형이라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놀림을 당하는 일이야 일상적인 일이라 속은 상해도 금방 잊어먹고 스스로 체념한 듯이 지내왔었다.
가끔씩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아이들에게 그러면 못쓴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때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했나 보다.
거기다 엄연한 제 방을 두고도 방에서 쫓겨나 휴게실에서 혼자 잠을 자며 서러운 마음이 계속 쌓여왔던 것 같았다.
커다란 휴게실에 불을 끄고 혼자 누워 있으면 무섭기도 하고 아빠 생각도 나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고 했다.
몇 번 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도록 해봤지만 경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오히려 딴 방으로 피난을 가곤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사고가 나기 전에 경수는 꽤 잘 생기고 똑똑해서 부반장도 했다고 한다.
경수의 아버지는 중국음식점을 했는데 평소에는 참 잘해주다가 술만 마시면 경수를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경수는 술만 안마신다면 아버지가 좋다고 했다.

경수가 저녁을 먹지 않아서 나는 경수를 데리고 분식점에 가서 저녁을 사먹였다.
경수는 어느새 기분이 회복되어 어릴 때 기억들을 산발적으로 얘기하며 신이 났다.
그날 나는 경수를 내 방에 재우기로 했다.
내 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경수는 잠이 들 때까지 반복해서 어릴 때 일들을 얘기했다.
"그래, 그랬구나. 저런 속상했겠네. 아이구 어쩌지?"
하며 나는 계속 맞장구를 쳤고 그럴수록 경수는 신이 났다.

경수가 잠이 들고나서 나는 찌근거리는 머리를 싸쥐고 밖으로 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경수에게선 고약한 냄새가 풍겨났고 밀폐된 조그만 내 방은 썩는 냄새로 진동을 했다.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8월 8일/제401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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