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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진우

진우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는, 총명하고 그림을 자 그리는 중학교 2학년으로 세 번의 가출 경력이 있는 아이다.
조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카리스마적인 분위기가 있어 일단의 조직을 이끄는 리더이다.
아이들 말로 녀석이 몸을 한번 띄워 발길질을 하면 서너명이 한꺼번에 나자빠진다고 하니 싸움실력이 꽤나 대단한 것 같다. 150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깡마른 체구 어디에서 그런 위력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또래들이 진우의 말이나 행동에 거의 전적인지지를 보내주는 걸 보면 사실인 듯 했다.

2층 방으로 옮길 때 담당 보육사로부터 특별한 재능과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루기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은 좀 별난 구석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속옷이며 양말까지 내손에 맡겨두고 필요할 때 가져가는 반면, 녀석은 빨래통에 빨래를 내놓지 않고 제 스스로 빨래를 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미 세 번의 가출경력이 있고,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제나름대로의 삶의 철할도 있어 여간해서는 손에 들어오지 않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녀석과 나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나는 진우가 내게 호감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고 곧 이어 이 녀석을 잡아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진우는 나와 대화하기를 즐겼다.
진우가 즐겨하는 이야기는 어릴 때 이야기였다.
집 뒤로 숲이 우거진 산이 있고 조그만 냇가가 집 앞으로 흐르는 산골에서 엄마, 아빠, 동생들과 함께 살던 때가 진우에게 남아있는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기억이다.
어느날 부터인가 아빠가 술을 드시고 와서 엄마를 때리며 싸우는 일이 잦아지며 진우의 행복한 어린시절이 막을 내린 것이다.
너무 어릴 때라 연유는 모르지만 엄마, 아빠가 다 떠나 버린 집에 세 남매가 남아 굶다가 울다가 잠이 드는 생활을 한동안 계속하다 이웃에 발견되어 시설로 보내진 것이다.
진우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평화로운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몇 달이 지나도록 진우는 가출도 하지 않았고 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어느날인가 "이제 가출할 생각 없나 보지?" 하자 녀석은 빙긋이 웃으며 "그런 생각이와 없겠능교. 나는 가출하면 다른 도시로 갈거시더. 어름하게 잡히오는 일 없을거시더" 한다.
그리고는 "아이니더. 인자 안하니더. 나가면 고생인데 머할라꼬 나가능교. 학교 졸업할거시더" 라며 나를 안심시켜 준다.
나는 정말 진우에 대해서는 안심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진우는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도 회피하기 일쑤고 짜증만 냈다.
필요한 일 외에는 나와 말을 하지 않았고 그때도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항상 기운이 없고 어디가 아픈지 밤이면 끙끙대며 식은땀을 흘렸고 저녁 식사 후에 한 두 시간씩 사라졌다 오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녀석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늦게 돌아온 진우는 내게 붕대가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어디 다쳤느냐고 묻자 "보모는 알 필요 없니더. 없으면 됐니더" 라며 휙 나가 버렸다.
채간호사에게 상황을 얘기하고 양호실 키를 받아서 녀석을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녀석은 나를 나가있게 하고는 혼자서 필요한 처치를 했다.
그날 나는 꽤 강경한 자세로 녀석과 양호실에서 대화를 시도했다.
이제껏 부드러운 태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도 오늘은 피할 수 없겠다 싶었는지 순순히 주저앉았다.
그러나 녀석은 "보모는 이해 못하니더. 그냥 나두면 괜찬아지니더. 모른 채 하소. 보모한테 불만없니더" 라며 피식 웃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즈음 진우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 이끄는 집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진우가 집단에서 탈퇴할 의사를 비치자 그동안 진우에게 충성을 다하던 아이들이 역으로 진우를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협박과 회유가 먹혀들지 않자 일종의 보복의식이 진행되었는데, 진우는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며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밤마다 정해진 코스를 돌며 구타를 당했다.
구타부위가 주로 복부나 허벅지 같이 옷속에 감추어지는 부분이라 꽤 오랫동안 진행되는 동안 전혀 알지 못한 채 지나간 것이다.
진우는 아이들에게 두둘겨 맞으며 오히려 시원했다고 한다.
때로는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에 맞싸우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내 얼굴이 어른거려서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진우는 미대에 가기 위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2년동안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낸터라 쉽지가 않아 내가 개별지도를 해주기로 했다.
나 역시 낮동안 예습을 해야 가르쳐줄 수 있었다.
새벽 5시면 나는 진우를 깨워 독서실에 앉혀놓고 일과를 시작한다.
"와! 보모 꼭 저승사자 같니더" 하면서도 순순히 독서실로 향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언젠가 읽은 "한 아이"를 생각한다.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8월 22일/제403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30)
방    문 :78605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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