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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결혼식을 올리다

우리 부부의 결혼식은 단체의 축제처럼 치러졌다.
주례는 회의 상임대표이신 김규원 교수님이, 사회는 이사인 우병걸씨가 맡아주었다.

주례와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김규원 교수님은 42세로 신부인 나와 불과 5년 연상이었고, 한번도 주례를 서보신 적이 없었다.
왠만하면 내가 드리는 부탁을 거절하시지 않는 분인데 주례만큼은 정말 완강하게 사양을 하셨다.
교수님의 입장은 이해가 되었지만 우리의 결혼식에서 주례는 꼭 김규원 교수님이어야만 했다.
김규원 교수님은 '존경'이란 단어는 현실에서 죽은 단어라고 치부해버린 내게 다시금 '존경'이 실제함을 알게 해주신 분이었고,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지게 하는 성숙한 인격을 지닌 분이었다.
극구 사양하시던 교수님이 손을 들어버린건 나의 폭탄 발언 때문이었다.
"교수님! 제가 신랑은 바꿀 수 있어도 주례는 절대 못바꿉니다."
남편은 누군가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될때면 빠뜨리지 않고 그때의 내 발언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곤 한다.

사회를 본 우병걸씨는 내게는 친구이며 남편에게는 선배였다.
또한 긴 시간을 우리 부부와 함께 활동해 왔기에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친구, 우리가 결혼한단 소식을 듣고는 한편으론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많았단다.
도대체 돈 안되는 일에 메달린 이 부부가 앞으로 뭘 먹고 살지, 사생활이란게 존재하기나 할런지...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우리 부부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썰렁하던 도청 강당은 생화로 뒤덮여 화사하고 따뜻했다.
꽃을 만지는 후배가 자진해서 꾸며주었는데, 세상물정에 어두운 나는 재료비랍시고 10만원을 건냈는데, 후에 그게 부케값도 안된다는 걸 알고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애초에 비용을 받을 생각이 없었던 후배는 내 맘 편하게 해줄려고 아무소리 않고 내가 내민 봉투를 받아주었던 것 같다.

남편은 양복을, 나는 한복을 입고 우리는 둘이 손을 잡고 나란히 입장하였다.
우리 앞에는 당시 내가 돌보던 초등4년 딸아이와 김규원 교수님의 초등2년 아들이 꽃을 뿌리며 앞서 가고 있었다.
하객들이 모두 귀를 기울여 경청할 수 있었던 감명깊은 주례사.
그리고 뒤이은 사회자의 주례사 요약정리에 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태리 유학중에 귀국한 시누이의 축가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결혼 예식이 다 끝난 후엔 후배들이 사무실에 마련한 피로연이 이어졌다.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느냐는 질문에 "됐나?" "됐다!"로 답하자 다들 얼마나 어이없어 하는지.
그런데 사실 그랬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함께 살던 우리는 어느날 그렇게 결혼을 결정했다.
제대로 된 프로포즈를 못받았다는게 신랑 신부 입장 직전에야 비로소 생각이 나서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지 않으면 입장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나중에 하겠다고 사정사정하던 남편이 할 수 없이 대사 읇조리듯이 "사랑합니다!"라고 한 후에야 신랑 신부 입장이 가능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장애인복지신문 조근태 편집국장은 결혼식장 5층까지, 피로연장 지하1층까지 목발을 짚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느라 서울에서 대구까지 오는 시간보다 더 걸렸다고 푸념을 했었다.(조근태 편집국장은 나와 동갑인 친구로 수년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시절 내내 단짝이었던 내 친구 효선이는 결혼식 전 대기실에서 한복을 입은 내 모습을 영 낯설어 했고, 결혼하지 말라고 막판까지 말렸다.
자기 사전에 내가 결혼하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결혼식 당일 신랑 신부는 짜여진 대본에 맞춰 움직이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떨리는 것도 없고, 흥분되지도 않고, 좀 멍한 듯도 하고, 몹시 피곤하고...
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는 한번이니까 하지 두번 할 짓은 못된다는데 서로 공감하며 웃었다.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6-10-26(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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