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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집 엄마의 기록노트 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접지 못한 엄마의 수줍은 흔적들입니다.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 어설픈 습작의 흔적,
스무살 언저리에 쓴 몇편의 시, 1년간 장애인복지신문에 연재한 보육사일기까지...
애육원의 크리스마스

이곳 애육원은 10월이 들어서면 벌써 크리스마스에 돌입한다.
크리스마스날 아이들은 그동안 도와주신 후원자님과 손님들을 초대해서 축하공연을 한다.
마치 옛날의 학예회를 연상시키는 크리스마스 발표회는 집안 식구들 전원이 참여하는 잔치이기도 하다.
꼬맹이들의 꼭두각시춤, 축시낭송, 무용, 중창, 합창, 연극, 꽁트 등 다양한 순서에 모든 식구들이 등장해서 한가닥씩 솜씨를 자랑한다.
가장 볼 만한 순서는 최고로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밴드이다.
짝짝이, 트라이엥글, 템 버린, 실로폰, 멜로디언, 리코더, 심벌즈, 북 등 집안의 모든 악기들이 총 동원되고, 아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보육사들도 한 두 순서를 맡게 되는데 다들 노래실력이 대단해서 멋진 하모니를 연출한다.

그러나 이 대단한 행사는 어른들의 도움없이 철저하게 아이들의 힘으로 준비된다.
어른들이 하는 건 고작 간식이나 챙겨주는 정도이다.
가업을 잇듯이 각 분야별로 한 명씩 후계자를 정해 전수하고, 그렇게 이어져 내려와 이제는 이 집의 오래된 전통이 되었다.
세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축하발표회가 오로지 아이들에 의해 준비되어 연출된다는데 방문객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0월이 되면 저녁마다 집안은 악기소리로 시끄럽고 휴게실이나 큰 방에선 무용과 발래 연습이 한창이다.
할 일이 없는 보육사들은 아이들의 연습을 구경하거나 아예 산책을 나간다.
방 안에 틀어박혀 무얼 한다는게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온갖 소리들이 집안 구석 구석까지 흘러다니기 때문이다.

12월에 들어서면 애육원은 집 자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바뀐다.
3층 꼭대기에서부터 지상까지 화려한 조명등과 반짝이로 옷을 입고 울긋불긋한 그림이 곳곳을 장식한다.
연극이나 꽁트의 무대배경도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다.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놀라운 에너지를 한껏 뿜어내게 한다.
일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개월동안 아이들은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를 보여주듯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혹독한 연습에 메달리는 것이다.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나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 무드에 젖어들 게 되었다.
첫 해에는 사실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저녁시간의 정기적인 공부시간도 사라지고 아이들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여러 가지 연습으로 분주했다.
모두들 넋이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해질수록 집안은 어수선하게 들뜨고 질서를 잃어 버리고 있었다.
보육사들끼리 몇곡의 중창연습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게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마침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밤이 되어 손님들이 꽉 찬 강당에서 무대의 막이 열리는 순간 혼란은 사라졌다.
아이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반짝이는 광채, 그리고 당당함.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이 우리 모두는 열정과 감동에 사로잡혀 그저 감사하고 즐거웠다.
순서를 앞두고 흥분과 긴장으로 불안해 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느라 쉴새없이 격려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날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었다.
한조각의 의혹이나 미움도 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했다.
나는 몇 번씩이나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왜 그 순간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왜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밤에 빠져들었다.

공연의 모든 순서가 끝나면 식당에서 파티가 열린다.
손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손님들이 돌아가고 뒷마무리가 끝난 자리는 허전했다.
격렬하게 돌아가던 엔진이 멈춘 뒤의 정적이 깔리고 우리 모두는 조금씩 허탈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또 한해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 또 한해가 다 갔다.
서른해를 살아낸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울 것이다.
새해에는 좀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보다 일관성 있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싶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이렇게 일기를 쓰겠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크리스마스다.
새벽 예배에 다녀왔다. 지금은 새벽 2시.
그 시절 밤은 정말 캄캄한 밤이었으니라.
그래서 별의 의미가 더 컸으리라.
도회적인 산만한 크리스마스 놀이는 이제 안녕!
정말 조용하고 은밀하게.
조금은 쓸쓸하게 그렇게......

 
(장애인복지신문 연재일 : 1997년 8월 29일/제404호)

이    름 :돌깡패
날    짜 :2004-02-23(00:32)
방    문 :56063
이 메 일 :nikol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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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용진 아~~~옛날생각 마니 나네요 ..^^자두 저 부류 속에 한 아이 였었는데 이제는 아련한추억이 돼버렸네요 ^^   2006-06-29 (22:47)

 돌깡패 너희들 정말 대단했었지. 넌 그때 어떤 순서를 했었니?   2006-07-0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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